top of page
애별고리의 기결 - 아타카

 

0.

 

  -도와줘.

  한밤. 급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에서 들려온 말은 단 한 마디였다.

  수화기 너머로 넘어오는 것은 거친 숨, 불티의 따닥이는 연주 소리, 매캐한 신음, 그리고 평소보다 힘없고 애처롭기만 한, 짙은 탈력으로 젖어버린 목소리.

  마치 젖은 장작 같은 전화였다.

 

  “…악마기사?”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전화가 끊겼다는 건조한 신호음만이 귓가에서 공회전했다. 다급히 발신번호를 확인해본다. 공중전화였다.

 

  “샌님!”

 

  하얗게 바래버린 머릿속에 익숙하고도 다급한 목소리 하나가 차게 찔러 들어온다. 돌아보면 뺀질이 녀석이 창문을 타고 제 방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같았더라면 멀쩡한 문 놔두고 창문으로 다니지 말라며 한 소리를 했겠으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인퀴지터에게는 제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이가 절실하던 차이기에.

 

  “나리가 안 보여요. 어디 있는 지 알 수 있어요?”

 

  하나 데스브링거가 그 말을 꺼낸 순간, 인퀴지터는 일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벽력처럼 깨달았다.

  악마기사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니, 명백히.

 

1.

 

  “응? 수녀님이 여기는 왜?”

 

  노인이 의아하단 듯 물어왔다.

 

  “근래 이 근방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제보를 들어 조사 차 와본 것입니다.”

  “아, 그쪽 사람이셨는감.”

 

  여인의 답에 노인은 금세 감을 잡았는지 혀를 짧게 끌끌 찼다. 보아하니 이런 일이 꽤나 잦았던 모양이다.

 

  “전국팔도서 예서 담판을 짓든 해결을 하든 하겠다고 오만 만신들 박수들 어중이떠중이에 사기꾼들이 다 왔었지만 아무도 끝을 보지는 못했수다. 헌디 희한허이. 내 무당이랑 스님들은 자주 봤는디 수녀님이 온 건 요번이 처음이라. 어데, 교회서 나오셨수?”

  “아, 저는 성당 교구 소속입니다만….”

  “그려, 교회서 오셨구만. 뒤짝은 보호자여? 수녀님 아직 야물지가 않아 보이는디.”

  “교회가 아니라 성당….”

  “네, 이 아이 보호자 되는 사람입니다.”

 

  아크메이지가 인퀴지터의 말을 가로채곤 대신 답했다. 인퀴지터는 이번에도 여지없는 오해를 받은 것이 못마땅해져 양 뺨의 볼우물이 도드라지도록 이를 앙 다물었다. 교회와 성당은 엄연히 다른데-물론 뿌리는 같다지만-그 차이를 아예 모르거나 알아도 무시하는 일이 부지기수이니 신앙심 투철한 인퀴지터로서는 여간 불만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모르는 것은 낫다. 그건 차차 알아가면 될 문제니까. 그렇지만 뻔히 들어 놓고도 무시하거나 일부러 틀리는 건 당최 무슨 예의인지!

 

  “인퀴지터. 마음은 알겠으나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알겠습니다.”

 

  그런 제 심정을 알고 있을 아크메이지가 속삭여 왔다. 평생 살아오던 성당을 나온 이래로 몇 번이고 마주하는 상황이지만 익숙해질 수 없었다. 사람은 의외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무심하답니다. 누누이 들어오던 소리. 납득은 했으나 마음은 별개였다. 듣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깨나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므로 오늘도 이렇듯 사실을 정정하려 시도하지만 결말은 결국 묵살이었다. 조금 기운이 빠지는 기분에 남모를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그녀의 본 목적은 이런 정보의 정정이 아닐 진데.

 

  “어르신, 혹시 그 신당에 대해 들은 바가 있습니까?”

  “알지! 내가 여기 토박이 아녀. 어릴 대부터 뺀질나게 거 드나들었구만….”

  “네?”

  “거 뭐, 어른들이야 동티 난다구 그 짝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허는디… 사실 악귀니 뭐니 그런 거 없던디? 내 보기엔 산짐승두 있구 거 사당이 절벽 끝자락이니까 위험하다구 가지 말라 카지… 지금도 내가 가서 청소 좀 해주고 오잖어.”

 

  싹싹 빗자루 쓰는 시늉을 해 보이는 노인의 말은 깨나 뜻밖이었다.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로서는 성당에서부터, 그리고 이곳 주민들로부터 그 사당에서 계속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제보에 조사 차 들른 것이었으므로. 한데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성당에서는 그 사당의 존재를 악마기사라 칭하며,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뿌리내린 불과 분노의 마귀였노라, 100년 전에 한 이단심문관이 그를 봉인하고서야 이 땅에 한시적으로 평화가 깃들었노라, 그리 말해온 바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최근 몇 년 들어 자꾸만 산불이 심해지고 있노라, 이것이 다 그 사당에 터를 잡은 불귀신이 노여워하는 게 분명하다, 하는 다소 미신적이고도 기이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데도 확실히 이상하긴 한 것이, 제 아무리 화재가 잦은 봄·겨울이라 하여도 너무 부자연스러운 산불이라거나 소규모의 화재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짓인가 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했다. 무엇으로 인해 불이 붙었는지도 알아낼 수가 없었고, 시간대도 장소도 대중없이 다발적이었던 것이다.

  한데 그 산불들 한가운데에서 홀로 그을음 한 점 없이 고색창연한 사당이라니. 그야말로 괴담의 주인공으로는 안성맞춤 아니겠나.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이 정말인가요?”

 

  무언가 미심쩍은 것을 감지했는지 아크메이지가 재차 물었다.

 

  “아 진짜라니까는. 내 말은 뭘로 들었수? 어제도 거기 청소하고 왔잖어!”

  “아니, 이 영감이 내 거기 가지 말라고 누누이 말해도!”

 

  웬걸, 제대로 말을 듣기도 전에 할머니가 쏜살같이 나타나 노인의 등짝을 냅다 내리쳤다. 쫙! 하고 찰진 소리가 신명나게 울렸다.

 

  “아이고, 보윤이가 오빠를 잡네. 거! 아이고, 나 죽는다!”

  “죽을 날 받아놓은 것도 아닌 영감이 무슨 엄살이야! 사람들 눈초리가 곱지 않다고 가지 말랬는데 거길 또 가? 또 가아?”

  “지, 진정하십시오, 어르신들!”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싶어진 인퀴지터가 다급히 상황을 정리하고자 나섰다. 다행히 저들 남매 말고도 보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보윤 노인은 금세 제 오라비를 타박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유, 미안해요. 수녀님이랑 박사님 보는 앞에서….”

  “아니오. 괜찮습니다.”

  “이해해요. 우리 오래비는 그 사당에 불귀신이 아니라 해신님이 자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해신… 말입니까?”

  “그려! 해신님 주무신대도! 이 이성윤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이 말이야! 수녀님보다 더 어릴 적에!”

  “이 화상이 또?”

  “잠깐, 잠깐. 그 이야기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는지요.”

 

  아크메이지는 직감했다. 아무래도 이 사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 같다.

 

2.

 

  나 열세살 적인가. 그때 나무도 좀 하구 나물도 캐러 그 산까지 갔었거든. 그때는 보일러니 뭐니 연탄이니 하는 게 많이 들어왔대두 아직 불 때우는 집도 많았어. 한데 봄이라구 비와서 마른 나무는 찾기도 어렵고. 나물 먹을 만 한 건 족족 다른 사람이 다 캐가서 없구. 근데 빈 손으로 돌아가기 뭐하니까 깊은 데까지 들갔지. 근데 고 때에 아가 산 속 깊이 들가면 뭐, 알잖어? 해도 일찍 지고 뭐가 보이지도 안 허니까 꼼짝없이 길을 잃은 겨.

  아이고, 큰일 났네. 이거 우짜누. 무서워가 발발 떨었지. 어두워서 짐승 소리가 귀신 소리처럼 들리고, 막 뭐가 나 지켜보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아빠 말 좀 잘 들을 걸 그랬다 싶고 오만 생각이 다 들어.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산기슭만 내려가면 어디 아는 곳이라도 나오겠거니 했는데 봄철 산에는 겨울 동안 쫄쫄 굶은 산짐승이 많은 걸 깜빡한 기라. 막 뒤에서 뭔 소리가 나는데 뭔가 잘못 건드린 기분이었지. 뭔지 모를 게 점점 가까워지는 것도 그렇구.

  이대로 있으면 짐승한테 객사하겠다 싶어 갖구 걸음아 날 살려라, 무작정 앞도 안 보고 그렇게 뛰었다? 그러다가 어디 나무 부린지 돌부린지가 걸려서 한바탕 굴러버렸지. 무르팍 다 개지고 입에 흙 들어가고 난리도 아녔어. 근데 정신 똑디 차리고 고개 들어 보니까, 아뿔싸. 어른들이 그렇게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노래를 부르던 그 사당인 겨. 하이고, 짐승 피하겠다고 죽어라 뛰었더니 귀신에게 잡혀죽겠네. 무릎 꿇고 싹싹 빌었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해 뜰 때 까지만 여서 숨어있게 해주십쇼. 나 아직 못 먹어본 것두 너무 많고 무섭십니더. 해만 뜨걸랑 잽싸게 산 내려갈 테니 함만 봐 주이소. 하구. 그때였어.

 

  ‘아이가 왜 여기 있지?’

 

  분명 나 빼고 아무도 없었는데, 내 눈앞에 웬 사람 하나가 떡하니 서있는기라. 놀라서 자빠질 뻔 했지. 귀신이 날 잡아 잡수러 왔구나!

 

  ‘밤늦은 산은 위험하다. 어서 내려가도록.’

 

  헌디 생각한 거랑 다르게 말씨가 묘하게 사근사근하지 않것어. 어라, 이상하다. 잡아 묵으러 온 게 아닌가? 나는 거따 대고 말했지. 어둡고 길도 몰라서 못 간다고. 그러니까 한숨을 푹 쉬고는 데려다 준다 카는기라.

  머선 생각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겄어. 어두워서 얼굴도 잘 안 보이구 들리는 건 목소리랑 옷자락 스치는 소리 뿐이었으니께.

  아, 그려. 도포인가 두루마기를 걸쳤던 것 같아. 내가 옷깃 꽉 붙잡고 내려갔었거든. 아마 어린 아 혼자 산 속에서 헤매니까 신경 쓰인 거 아닌가 싶긴 헌디.

  내려가는 길은 옆에 해신님이 있어서 그런가, 무섭지가 않데. 산짐승도 얼씬을 안 하고 이상한 기분도 안 드는 겨. 그 전만 해도 막 누가 기분 나쁘게 쳐다보는 것 같았거든.

  산기슭 다 내려오고 보니까 아는 길이 보여. 신세진 게 미안해가지구 이제 혼자서도 갈 수 있다고 그랬는데… 어이쿠. 옆에 아무도 없는 기라. 나는 분명 옷소매 잡고 조심조심 내려왔는데 손 안에 아무것도 없어. 그래두 사지 멀쩡하게 산 내려온 게 어디여? 감사합니다, 하고 집에 헐레벌떡 돌아왔수다.

  그 뒤로 거 절벽 족 사당 꼬박꼬박 찾아가서 고수레 해 드리다가, 생각해보니 해신님인데 고수레는 안 드실 것 같아서 접시에다가 끼니 좀 챙겨드리고 그랬지. 가서 청소도 좀 해 드리고…. 아, 왜 해신님이라 생각했냐고? 물비린내랑 소금 냄새가 하도 쎄서 영락없이 그렇게 생각했지. 그리구 고 베름빡에 혼자 지내면 얼마나 쓸쓸하겄소. 나라도 꼬박꼬박 얼굴 비춰야지.

  솔직히 선무당들이랑 땡중들 와서 혼쭐나고 가는 거 보면 꼬시다 싶어. 어데 해신님께 망발이여, 망발이? 불귀신한테 우리 지켜주시는 게 누구인데 은혜도 모르고 원… 그러니까 수녀님이랑 박사님은 허튼 짓 말고 그거 우리 해신님께 헛소리 하는 것 좀 막아주소. 보니까 그짝들은 말이 좀 잘 통할 것 같아서 그려.

 

3.

 

  “거기, 둘 다 동작 그만.”

 

  머리 위로 낯선 목소리가 떨어진다.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는 무심결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무슨 용건이야? 수녀님이나 어르신이나 욕보기 전에 내려가시죠.”

 

  언뜻 보아서는 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봄의 산과 신록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무 위에서 걸터앉아 그들을 내려다보는 한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

 

  “넌 누구지?”

  “대답할 의무 있어? 없으면 입 싸물고 그냥 내려가시죠.”

  “말버릇 한 번 고약하군.”

  “그쪽 말버릇은 시대착오적이고 말이지?”

  “얼굴도 통성명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들을 소린 아니라 본다만.”

 

  깊게 눌러쓴 카키색 후드 집업, 가벼워 보이지만 주머니가 많이 달린 바지, 발목까지 올라오는, 제법 닳은 티가 나는 운동화 따위가 눈에 띈다. 얼굴 하관마저도 그늘이 어두워 잘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똑같이 짙은 빛깔의 귀와 꼬리까지. 아마 부러 기척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인퀴지터는 제 목에 걸친 장미 묵주를 더듬어 쥐었다.

 

  “내려갈 생각이 없구만?”

  “나는 맡은 바 임무를 다해야 한다. 너야말로 네 갈 길을 가든지 할 일을 하든지 해라.”

  “어이구, 이제 보니 시대착오적 말투가 아니라 군대식 말투셨네. 어우, 무서워라. 수녀님이 이렇게 딱딱해서 어디 쓰겠나.”

  “내가 수녀인 것과 말투가 무슨 상관이지?”

  “…방금 못 알아들은 거야?”

 

  인퀴지터와 낯선 청년-목소리로 미루어 보건데 아무리 높게 쳐도 30대는 아니었다-이 아옹다옹하는 사이 아크메이지는 그를 유심히 관차랗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였다.

 

  “두 사람 모두 그쯤 하지요. 거기, 자네. 자네도 혹 이곳에 있는 신당을 조사하러 온 겐가?”

  “그렇수다.”

  “허면 우리 함께 신당을 찾아가는 건 어떻겠나? 우리의 목적이 일치하는 듯 한데.”

  “교수님! 누군지도 모르는 수상한 사람을…! 게다가 저 치는 영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낌새도 그리 좋지 않고요.”

  “그럴 것 같다 생각했지만, 마침 잘 되었군요. 일이 수월해지겠어요.”

  “이렇게 입씨름하느니 둘 다 빨랑 내려가시죠? 둘 다 불길한 거 못 느낍니까? 어지간한 잡귀들은 이 근방에 얼씬도 안 한다고요.”

  “그랬는가? 몰랐군.”

  “…뭐야. 어르신도 보이는 사람이라서 온 거 아니었어요?”

 

  불청객의 말에 아크메이지가 허허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귀신이니 악마긴 하는 것들을 볼 줄 모른다네. 듣지도 못하고. 워낙에 둔해서야 말일세.”

  “그럼 왜 오신 겁니까. 민속학자에요?”

  “민속학도 흥미가 있지만… 내 전공은 이공계열이라네. 그보다는 이 아이, 인퀴지터를 옆에서 돕는 의미가 크네만.”

  “아하, 어르신이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요 종교깡패 수녀님이 볼 일이 있으셨다? 그럼 더 내려가셔야지. 여기 만만하게 보다가는 큰코다칩니다요?”

  “종교 깡패라니! 교수님, 저는 역시 반대입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교회랑 성당 쪽 인사들이 다 깡패지, 그럼.”

  “자, 자. 둘 다 조용. 합죽이가 됩시다.”

  “합죽이… 헙.”

 

  다시 말싸움으로 번질 기미가 보이자 아크메이지가 중재하고, 인퀴지터가 습관처럼 구호를 따라 외다가 입을 막았다. 청년이 ‘저 바보는 뭐야?’ 하는 기색을 내비친 건 덤이었다.

 

  “인퀴지터. 저는 당신의 능력을 신용하지만, 때로는 가톨릭의 분야와 다른 관점에서도 도움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마침 저 청년이 우리와 같은 목적을 지니고, 다른 분야로 도움을 얻을 수 이을 성 싶으니 협력을 해보는….”

 

  말을 잇다보니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었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착각인가?

 

  “…교수님?”

 

  상념은 오래지 않는다. 인퀴지터의 의아한 기색이 역력한 되물음에 영리한 노인은 재빨리 언어를 주워 섬긴다.

 

  “미안합니다.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하여간, 제 생각에는 협력도 해봄직하다 사료됩니다.”

  “허이구. 희한한 어르신일세. 방금 만난 사이에 뭘 알고요?”

 

  인퀴지터가 염려 반, 미심쩍음 반으로 아크메이지를 걱정스레 올려다 보는 사이, 청년이 되바라진 어투로 이죽였다.

 

  “물론 자네에 관한 건 들어 안다네. 데스브링거였나? 이 지역의 귀신감찰관을 이리 만날 줄은 예상 못했거든.”

  “허, 민속학 전공 아니라면서요? 아시는 게 많은데요?”

  “이리 만나게 되어 세상 살고 볼 일이라 생각했지. 반갑네.”

 

  갑작스레 저만 두고 진도가 나가버린 교수와 불청객 놈을 보며 인퀴지터가 얼떨떨하게 녹색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람? 데스블이거니 귀신감찰관인지 하는 건 또 무엇이고….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와 호기심을 참지 못한 어린 사제는 교수의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겼다.

 

  “저, 교수님. 저 자를 아십니까? 그리고 귀신감찰관은 무슨 말입니까?”

  “아, 미안합니다. 인퀴지터에겐 생소하겠군요. 귀신감찰관은 말 그대로 귀신들의 명부를 들고 그 일대 귀신들을 관리·감독하는 직책입니다. 데스브링거는 저 친구의 별명이고요.”

 

  문헌에서도 몇 번 나온 바 있죠. 아직도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었군요. 언뜻 흥미로움까지 석인 설명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스브링거는 시큰둥하게 콧방귀나 뀌었지만.

 

  “그렇게 띄워줘도 뭐 안 나옵니다.”

  “정말 생각 없는가? 보험 하나쯤 두어도 나쁘지 않을 텐데. 자네도 이 일의 위험성을 알 것 아닌가.”

  “교수님, 진심입니까?”

  “뭐, 어르신이야 얼뜨기도 아닌 것 같아서 나쁘지 않은데… 저 수녀님이 저를 너무 싫어하느뎁쇼. 뜨내기 냄새도 폴폴….”

  “너도 나더러 깡패니 뭐니….”

  “그야 나는 딱 그쪽이 대하는 만큼 돌려주는 거고요. 그리고 전 원래부터 그쪽 계열이 싫기도 했고.”

  “그러는 넌 범죄자 마냥 품속에 칼을 주렁주렁 숨긴 놈이…!”

  “와, 이걸 또 알아차리네? 정정하지, 뭐. 아주 얼간이는 아닌 걸로. 근데 듣는 사람 참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습니다요, 거?”

  “흐음.”

 

  아크메이지가 짧게 침음을 흘렸다. 저렇게 서로를 싫어해서야 원. 그나마 데스브링거 쪽은 잘 하면 협조해 줄 법도 한데. 인퀴지터 측에서 싫은 기색을 숨기질 못하니 도리가 없었다. 그 태도에 똑같이 모나게 반응하는 것도 그렇고.

  인퀴지터가 지닌 특유의 경직성과 우직함을 경험 없는 어린 것들 특유의 성질로 보고 어여삐 여기긴 했으나, 확실히 이런 때에는 좀, 골치가 아팠다. 배움이 빠른 이니만큼 조만간 살살 타일러 보는 것이 나을 성 싶다.

 

  “이 벽창호 깡패 수녀가!”

  “빌어먹을 망종 놈!”

 

  …어쩐지 둘 다 유치하게 싸우고 있는 건 기분 탓인가. 하는 걸 보아하니 두 사람 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겠는데. 점점 소란스럽다 못해 쨍쨍거리는 언성을 견디다 못한 아크메이작 결국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4.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크메이지의 고민은 다소간에 괜한 것이 되었다. 협력이 어렵다고 한들 세 사람의 목적은 일치했고,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 두 사람 모두 한 쇠고집 하는 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데스브링거는 어떻게든 저 귀찮은 인사들을 치우고 조사를 행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들 일행에게 온갖 수작을 부렸고, 인퀴지터는 제 사전에 임무 중도 포기라는 개념 따윈 존재하지 않는 데다 저 망종 자식에게는 죽어도 못 따라준다는 뜻 모를 반감이 생겨버린 탓에 진도는 양측 다 지지부진했다. 아크메이지는 그 견원지간이 따로 없는 모습에 해탈하여 허허 웃기만 하였고. 어쨌거나, 이러다가는 둘 다 소득도 없이 시간만 허비하겠다는 것에서 의견이 일치한 덕에 이 삐걱거리는 삼인조 조사단이 임시결성 되었다는 소리였다.

  …물론 그 가는 동행길도 평탄치는 않았다만.

  이런 상황에 이르자니 아크메이지는 마침내 문제의 그 사당에 도착했을 즈음 믿지도 않는 신을 부르짖을 뻔 한 것이다.

  400년도 넘은 사당이라더니, 그 말대로 사당은 예스럽고 고아한 멋이 있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것은 아닌지라 단청은 색이 바랬고 몇몇 기와의 이가 맞지 않은 것도 더러 있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공들여 청소해준 누군가의 손길 덕인지 마냥 을씨년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불귀신이니 악마기사니하는 불길한 것이 갇혀있는 괴담의 주인공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고요와 평온. 사당의 뒤편으로는 푸른 절벽이 깎아지른 채다. 마치 끄트머리에서 바다를 등지고 선 것들을 보는 양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데스브링거는 해안가 벼랑을 내려다보다 별안간 눈앞이 어찔해지는 기분에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바다가 제게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제 온 몸을 뒤덮고 삼켜버릴 것처럼 아득하다. 그리고 파도의 잇새로 으스러지겠지.

  생각해보면 바다는 늘 그랬다. 저 어스름히 깊고 푸른 색채가 사람을 홀렸다. 꼭 뛰어들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매혹.

  -아니, 아니잖아. 너는 저 바다에서 소중한 걸 잃어버렸어.

  무엇을?

  되물어 보아도 답이 돌아올 리 만무했다. 괜스레 찜찜한 기분이 들어 걸음을 빨리한다. 역시 바닷가에 오래 있어 봤자. 그는 언제나 이 짠물 냄새가 싫었다. 이 일대의 바다가 그 흔한 물귀신 한 놈도 없다는 걸 알아도 그러했다. 아아, 쿰쿰해라.

 

  “뭐 좀 찾은 거 있어요?”

 

  절벽을 돌아 사당으로 돌아오자 먼저 와 있던 종교 깡패와 교수님 나으리가 보였다. 두 사람 다 주변에서는 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젓는 것 또한 보였다.

 

  “역시 남은 건 이 사당뿐이겠군요.”

 

  아크메이지가 뇌까렸다. 어쩐지 모르게 조금 꺼려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특이한 것도 사당뿐인뎁쇼. 해안 쪽이랑 절벽은 별 다를 게 없어요.”

  “그럼 들어가 보지.”

  “잠깐만요, 샌님. 꼭 그렇게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요! 뒷말은 먹혀버려 바깥으로 나오지 못했다. 조금 주저하거나 등록되지 않았다 한들 이것도 문화재란 사명감에 조심스러워 하던 둘과 달리, 인퀴지터는 망설임 한 점 없이 문을 벌컥 열어 제낀 탓이다. 저러다 진짜 동티나면 어쩌려고!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겁도 없이!

 

  “….”

 

  하지만 그런 타박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경첩도 손을 봤었는지 소리 없이 빠끔히 입을 벌리는 문 속에서 보이는 풍경 탓이다.

  가장 먼저 시야 속으로 들이닥치는 것은 거뭇한 먹으로 그려낸 듯 어두운 불꽃이었다. 아니, 실제 불꽃으로 착각할 만큼 생경한 그림이었다.

  족자 속 그림은 직관적이다. 까아만 불꽃을 발아래 지르밟고 서있는, 하늘의 신장처럼 키가 크고 곧아 보이는 사내. 양 옆으로 환도를 비껴 차고 검붉은 철릭을 두른 채, 오른 팔에는 예스런 갑주를 걸쳤다. 조선시대 보병에게 주어지는 종이갑이 아닌 장군의 갑주다. 시선을 조금 위로 하면 하늘에서 무수히 내리는 별꽃들에 가려진 오른쪽 얼굴 또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묘한 그림 위로, 사내의 심장 근처일 법한 위치에 박혀있는 청은빛 곧은 검.

 

  “이게 대체….”

  “묘하군. 그림의 양식도 전통적인 수묵과는 다르고. 게다가 이 검은… 서양식인데.”

  “이런 검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뎁쇼?”

  “…당연할 거다. 일반인들 손으로 뽑히지 않았을 테니. 신경이 쓰이긴 해도 일반인들은 무속이나… 이런 쪽으로 밝지 않을 경우 원래 그렇겠거니 했을 거다.”

  “뭐야, 샌님. 이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깐 그렇게 당당하게 문 열어 제낀 건가?”

  “그건 아니지만… 성당에서 100년 전에 선대 이단심문관이 직접 이 사당에 있는 존재를 봉인했노라 들은 바 있다.”

  “워, 그럼 이거 건드리면 안 되겠네요?”

  “망종, 너와 나만 조심하면 된다. 아크메이지님은 일반인이라 봉인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

 

  자신이 아는 것을 간략히 설명한 인퀴지터가 아크메이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교수님, 조사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요. 잠시….”

 

  아크메이지는 조심스레 족자와 제단의 곁에 앉아 유심히 그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제단 쪽은 눈여겨 볼 것이 없다 판단한 것인지 검과 족자를 유심히 살피던 교수는 이내 인퀴지터를 다시 불렀다.

 

  “인퀴지터, 여기 검에 새겨진 글자가 라틴어인 것 같은데, 혹 읽을 수 있겠나요?”

  “라틴어 말입니까?”

 

  그 말대로다. 사당의 안이 어두운 편이라 눈치 채기 쉽지 않다 뿐, 족자에 박힌 검신에는 또렷한 라틴어 경구가 음각되어 있었다. 어린 이단심문관은 펜라이트의 얇은 빛줄기에 의지해 경구를 더듬어 뇌까렸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뭐야. 무슨 뜻이에요?”

  “영광송의 한 구절인데… 잠깐, 인퀴지터?”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래.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이 사람이 이곳에서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된다.

  누가?

  모른다. 아마도, 그가.

  아주 오래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이승의 것이 아닌 소리들을 듣는 것이 익숙한 인퀴지터에게는 무엇이 이상한지 알아차리기조차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검의 손잡이를 쥔 손은 박혀버린 말뚝을 쑥 뽑아버린다. 옴짝달싹 않을 것처럼 깊게 박힌 검은 언제 그랬냐는 양 저항도 없이 틈 사이를 비집고 혀를 내민다.

 

  “샌님, 지금 뭐 하는…!”

 

  말릴 틈조차 없었다. 이윽고 못 아닌 못에서 풀려난 족자가 아랫부분부터 조금씩, 조금씩 귀퉁이부터 갉아 먹히듯 불타기 시작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양 느른하다.

  동사에 무어라 이루 말하기 어려운 내음이 코를 찔러오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 났군.”

  “우리, 속된 말로 X된 겁니까요? 어이, 샌님! 뭘 아직도 멍하게 있어요! 정신 차려!”

 

  분명 해안가이다 보니 짭쪼름하고 비릿한 소금 냄새가 나는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한데 이 차원이 다른, 깊고 어둑한 바다의 체취는 당최 무엇이란 말인가? 금방이라도 밀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착각이 인다. 젖은 나무가 타들어갈 때 으레 나곤 하는, 껄쩍지근하고 매캐하기 짝이 없는 그을음의 잔향도 섞여 난다.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여리디 여린 풀꽃의 비린내 또한.

  아, 마치 비 쏟아지는 바다 속에서 산불이 난 것 같지 않나. 말도 안 되는 표현인 것을 알아도 떠오르는 생각이란 것은 그것 뿐.

  그리고 인퀴지터는 그 모든 광경 속에서 검을 쥔 채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다. 어서 뭐라도 행동을 취해야 한다며, 데스브링거가 제 어깨를 잡아 흔들고 아크메이지가 팔을 붙잡는 순간마저도.

  소리,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너무, 많았다.

  제 가진 힘조차 통제하지 못해 귀를 막고 스스로를 가두어 살던 어린 날에도 이런 소리는 들은 일이 없었다.

  아, 그것은 멀고 깊은 바다의 목울음.

  소용돌이와 용오름과 고래가 합주하는 거대하고 장엄한 음악.

  가사 없이 노래하는 억겁 같은 군대의 진군가.

  견제를 위해 울리던 전쟁 나팔의 경고음.

 

  “아….”

 

  그 모든 것에 짓눌려 짧은 탄성만을 흘린다. 줄곧 쥐고 있던 검이 황금빛 불티와 함께 녹아내려 장미 묵주로 돌아온 것도 모른 채.

 

  “인퀴지터, 어서!”

 

  훅, 새카만 불길이 끼쳐온다. 그러나 그 손길은 사제의 몸에는 닿지도 못한 채 되돌아간다. 그 모습이 꼭 무언가의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손을 물리는 모양새 같았다.

 

  “묻겠다.”

 

  낯선 듯 익숙한 목소리. 서리서리 깔린 냉엄함과 결벽함이 드러나는 낮고 거친 목소리다.

 

  “날 깨운 자가 누구인가.”

 

  사내다.

  족자 속에서 걸어 나온 그 사내가 눈앞에 있다.

  어둑한 불꽃이 걸음걸음마다 사그라들고 해류와 바람으로 지어 입은 양 펄럭이는 검붉은 철릭이 허공에 몸을 흩뿌린다. 밤바다에 잿더미를 뿌린 두 가지 색의 긴 머리칼, 오른 눈에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 자수와 문양을 새긴 안대를, 양 옆에는 길게 꼬리를 드리우는 환도들이 차갑다.

 

  “듣지 못했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일련의 변화를 담아낸 녹빛 눈이 깨달음으로 명징해진다. 인퀴지터는 직감했다.

 

  “누가, 나를 깨웠나.”

 

  이 자는 존재 그 자체로 하여금 나의 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다.

 

5.

 

  “…그런 일이 있었죠.”

 

  데스브링거는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오한이 든다며 과장스럽게 몸을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스터는 시큰둥한 얼굴로 제 할 말을 이었지만.

 

  “너네다운 만남이구만. 그래서. 그게 끝이야? 불 낸 범인은 누구였는데.”

  “평소에 감수성 없다는 말 자주 안 듣습니까? 하여튼, 방화범은 잡귀 놈이 장난친 거였습니다요. 생전에 불에 타죽었다나 뭐래나… 참내.”

 

  억울한 마음이야 알겠다마는 그걸 똑같이 남에게 돌려주는 심보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것도 아무 관련 없는 생판 타인에게. 데스브링거는 그 질 낮은 잡귀를 떠올리곤 혀를 끌끌 찼다. 지금은 그의 귀명부에 이름을 올려 관리감독을 받는다지만 괜스레 괘씸해지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확실히 그 때와 상황이 비슷하긴 하군. 불도, 흔적도, 방식도….”

 

  같이 추억 아닌 추억에 잠겨 첫 만남을 반추하던 아크메이지도 첨언했다. 지역 뉴스에서는 지금 연일 이어지는 화재 사고가 보도되고 있었다. 한겨울, 동시다발적이고 패턴을 예측할 수 없는 화재들. 시간대도 장소도 규칙성이 없다. 현대에 들어 부쩍 발달한 과학 수사로도 화재의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아, 내친 김에 그 잡귀 놈을 정보원으로 보내볼까? 비슷한 짓 하고 다니던 놈인데 그쪽으로는 빠삭하지 않겠어. 예로부터 동종업계는 당사자들끼리 가장 먼저 눈치 챈단 말이야.

  데스브링거는 불만스럽게 펜을 까딱이고 빙글빙글 돌렸다. 한창 풀던 검정고시 문제집은 문제를 풀기는커녕 뉴스에 나온 정보들과 그들 일행이 모은 정보들로 뒤얽혀 빼곡한 채다. 모르는 사람이 보거든 이게 낙서인지 공부의 흔적인지조차 분간 못할 지경이었다.

 

  “뭔가 짚이는 건 있나?”

  “아직이요. 이번에도 초자연적인 존재의 소행인 건 확실한데….”

 

  그렇다고 해서 이렇다 확신할 만한 단서는 아직 없다. 지지부진한 조사상황에 불퉁해진 청년은 신경질적으로 사과주스를 빨아들였다.

 

  “왜 확신을 못하는데. 그리고 조용히 좀 마시지?”

  “범주야 좁힐 수 있지만 특정하는 게 안 되는 거라고요. 지금 죄 다 꼬리도 못 잡고 허탕치고 돌아오기 일쑤인데, 말이 쉽지.”

 

  그리고 남이사. 제가 주스 마시는데 뭔 상관이에요? 이미 다 마신 거 계속 빨대 꽂고 들이마시니까 시끄럽잖아! 집중 안 된다고 이 생각도 배려도 탑재 안 한 멍청한 자식! 평소에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지 연구나 하는 인간이 헛소리를 다 하네? 와, 이거 억울해서 살겠냐? 17번 문제 틀렸으니 그거나 고쳐라. 댁은 그걸 왜 지금 말해요? 네 멍청함이 눈물 나게 안타까워서 못살겠더라.

  질문인지 트집인지 모를 화두로 시작된 대화는 곧 시비걸기 경진 대회가 되고 말았다. 노교수는 그 꼬락서니를 두고 그냥 고개만 살레살레 저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싸울 때마다 골머리를 앓았던 아크메이지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더 심해지지 않는 이상 배경 음악 즈음으로 취급할 수 있게 된 지 오래였다. 저래 뵈어도 신뢰 관계를 전제로 두고 싸운다는 것을 알게 된 덕이다.

  게다가 곧 돌아올 누군가가 이 유치찬란한 말싸움-두 사람 다 아크메이지 앞이라서 육두문자를 안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을 일단락 내줄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시끄럽다.”

  “억!!”

  “우아악! 나리??”

  “자네 벌써 왔는가? 오늘은 좀 빠르군.”

 

  거 봐라. 이렇게 중재자(?)가 나타나주지 않았나. 물론 철딱서니 없이 싸우던 두 사람이 놀라 자빠지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요청한 자료다. 알아서 하도록.”

  “그 사이에 이것까지… 이거 원, 신경 써주어 고맙네.”

  “헛소리를.”

 

  어느 정도 교활한 면모도 있는 교수는 이제 저 사내가 무어라 더 말을 이을지 먼저 읊어줄 수도 있었다. 시간이 비어서 한 것뿐이다, 내가 그 정도도 못하는 머저리로 보이냐는 둥의 모로 봐도 삐딱하기 그지없는 변명을 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자네. 자네의 세심함과 다정은 이미 다 들통 났다네. 이를 어쩌나.

 

  “혹여 몸이 안 좋기라도 한가? 안색이 안 좋네만.”

 

  겨울바람도 저 사내를 쓰러뜨리지 못할 진데, 악마기사의 안색은 묘하게 파랗게 뜬 감이 있었다. 언뜻 지쳐 보이기까지 했다. 설마 나갔다 온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것일까. 아크메이지의 파르스름한 눈이 가늘게 접혔다.

 

  “네가 신경 쓸 사안이 아니다.”

 

  허나 제 약하고 무른 구석을 쉬이 내어줄 턱이 없었다. 그는 나름대로 신뢰하는 이들에게마저 자존심을 앞세우는 경향이 강했으므로.

  짤막한 거부를 끝으로 악마기사는 몸을 돌려 거실을 떠났다. 늘 그리했듯 데스브링거가 자신이 따라가 보겠다며 눈짓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머니에는 은근슬쩍 아까 전 인퀴지터가 먹으면서 공부하라며 주고 간 초코파이 몇 개를 쑤셔 넣은 채였다. …설마 먹을 것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건 아니겠지?

 

  “자네는 안 따라가 보는 겐가? 걱정된다고 이마에 쓰여 있네.”

  “저 후드 녀석 대화 다 하고 나면 가려고요. 쟤랑 있으면 하려던 말도 깜빡한단 말이에요. 말 잘 통하는 놈 두고 굳이 멍청이 하나 더 끼워 이야기하기도 귀찮고.”

  “뭐? 자네가? 하하하!”

  “뭐가 웃겨요, 교수님?”

 

  당최 어떤 부분이 그리 재밌느냐며 마이스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마이스터를 잘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항상 자기 본위에 제 할 말은 참지 않고 다 하는 이가 휘둘리게 만드는 이들이라니, 세상에, 그것도 그 마이스터를!

  세상은 역시 살고 볼 일이었다. 아크메이지는 참을 수 없는 유쾌함에 마이스터가 불만을 표하건 말건 한참을 그리 웃었다.

 

6.

 

  “뭐냐.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따라오지 말도록.”

  “초코파이 드실래요?”

 

  서릿발같은 축객령에도 굴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악마기사와 대화를 이어가는 비결…이다. 물론 헛소리 반, 진담 반이긴 하다. 저 고고하고 지엄하신 기사님께서는 저를 향한 굳은 애정에 취약해지는 편이었으므로. 하물며 제 냉랭한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치대어 오는 어린 것들이라면 오죽하겠나.

  이런 사유로, 데스브링거는 악마기사가 저와 샌님에게 정말 무르게 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샌님이야 그런 인식도 없다마는 저는 알고 이용해먹는 것에 가까웠고. 오, 물론 죄책감이 있을 리는 없다. 당연하지 않나. 순수하게 걱정하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으로 십분 써먹는 것뿐인데. 게다가 그는 웬만해서 타인이 그어둔 선을 잘 알고 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문제 있어? 없지? 좋아. 결론 끝.

 

  “자요, 나리. 아까 샌님이 준 건데 이거 맛있어요.”

 

  뭘 먹어야 기분도 나지 않겠습니까요? 저 팔 떨어집니다. 빨리요! 마이스터가 보았다면 아주 아양에 내숭에 가지가지 한다며 어처구니없어 했을 광경이 이어졌다.(내숭은 몰라도 아양은 오해다.) 악마기사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낯이었다. 이걸 받아, 말아. 아니면 그냥 쫓아내? 그런 기색이 몇 번 스쳐가더니 사내는 이내 제 손에 들린 초코파이를 건네받았다.

 

  “용건은 이것으로 끝인가.”

  “네.”

 

  대답 하나는 쌈빡하다.

 

  “그럼 따라 들어오지 말도록.”

  “어이쿠, 방해하지 않을 테니 들여보내 주십쇼.”

 

  악마기사가 방문을 닫으려 들자 데스브링거가 잽싸게 방문 사이로 발을 집어넣었다. 아슬아슬하게 문틈으로 발을 찧기 전에 멈춘 사내가 그를 가볍게 흘겨본다.

 

  “내 말을 뭐로 들은 거지?”

  “요 두 귀로 들었죠?”

 

  그 사이 데스브링거는 기어코 문지방을 넘어 악마기사의 방에 입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방문까지 야무지게 닫아주는 행동에 저 물러터진 기사님은 한숨을 푹 쉬며 휙 소리가 나도록 몸을 돌렸다. 그 서슬에 차가운 바람 내음이 나부꼈다가, 가라앉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바깥 냄새가 차가웠는데 지금은 제법 부드러워진 걸 보니 그도 조금은 기분이 누그러든 모양이다.

 

  “조용히 있지 않으면 쫓아낼 거다.”

  “넵.”

 

  이것 봐요. 하여간에 당신도 참 무르다니까.

  간단한 합의가 오가면 악마기사는 이제 제 할 일을 하기 위한 밑 작업을 준비한다. 외출용이었음에 분명한 새까만 도포와 정장은 정갈한 쪽빛 저고리와 토시 차림으로 바뀌어간다. 오늘은 그림 그리시려나. 그나저나 저 옷 바뀌는 모습은 언제 봐도 편리해 보인단 말이지. 옷값 걱정은 안 해도 될 텐데. 세탁비도 안 들고.

  데스브링거가 다소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동안 너른 바닥에는 먹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와 화선지, 먹과 붓, 연적, 벼루, 문진 따위가 자리를 잡는다.

 

  “먹 갈아드려요?”

  “필요 없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시중에 파는 먹물이 아니라 진짜 먹을 사용하는지. 그는 때때로 편리한 방식과 문물을 두고도 예스런 방식을 고집할 때가 있었다. 이게 바로 소위 말하는 레트로 감성, 뭐 그런 건가. 아니면 아크메이지처럼 나이 먹은 이들 특유의 고집인가.

  저 모든 과정이 악마기사가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동안은 말없이 먹 가는 소리와 물소리, 붓을 적시고 빠는 소리, 화선지와 먹 붓이 스치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물결친다.

  붓질에는 한 점 망설임도 거침도 없다. 그 절도마저 느껴지는 획에서 검을 휘두르는 악마기사가 비쳐 보일 지경이다. 그런 단호함.

  매와 국 같은 섬세한 것부터 시작해서 사군자 중에는 어려운 축으로 손꼽히는 난과 죽까지 다양한 것을 틔워내던 손은 갈수록 느려지고, 느려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완연히 멈추어 선다.

  똑.

  먹물 떨어지는 소리.

  똑.

 

  “나리?”

 

  똑.

 

  “나리, 그림 다 번져요!”

 

  똑.

  몇 번이고 불러도 대답이 없자 보다 못한 데스브링거가 붓을 빼앗아왔다. 평소라면 이렇듯 무방하게 빼앗기긴 커녕 제 손을 막아내거나 제압했을 이는 여즉 미동도 없다. 허공을 헤매는 흐릿한 시선과 넋 없는 얼굴. 덜컥, 심장이 뱃속으로 곤두박질 친다.

 

  “정신 차려요, 나리!”

  “아.”

 

  어깨를 붙들고 다급히 흔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내가 희미한 감탄사를 뱉는다.

 

  “…이 손 내리고 비켜.”

  “나리, 정말 괜찮은 거 맞죠?”

  “네가 걱정할 일 아니다.”

 

  당신이 이러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그 순간 가장 절실한 말이 심장에 고여 죽어갔다. 내뱉어도 좋은가. 아닐 것이다. 저 사내는 정도 이상으로 깊어지는 애정과 친밀함에 기쁨보다 두려움을 앞서 느낀다. 이 마음을 표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도 무슨 일 있거든 꼭 말해 주십쇼.”

 

  하고 많은 말 중에 그것 하나만을 골라 끄집어내고는 순순히 물러선다. 몸을 일으키자 바짓단에 옮겨 번진 먹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따가 빨아야 하려나. 내려다보는 시야 속에는 온통 번져버린 수묵이 화선지를 더럽힌다. 평소처럼 그림이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불안이 술렁이며 가슴 속에 파랑을 일으킨다. 어째서일까.

  그래. 당신의 그 표백당한 넋을 본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거 물에 빨아버리는 게 낫겠죠?”

 

  서양화나 디지털 그림과는 달리 동양화, 그 중에서도 수묵화는 특히나 그림을 잘못 그려도 고치거나 지울 수 없다. 한 번 한 번 붓질을 할 때마다 신중해져야 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그림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물에 담가 씻어내는 것 뿐.

  흐르는 물에 조심스레 먹을 씻어내고 나면 거기에는 처음처럼 흰 화선지만이 남는다. 이것을 볕에 널어 잘 말리면 이제 다시 그림을 그려낼 수가 있는 것이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조금 전 당신은 그 잘못 그린 수묵화들처럼 물에 녹아 사라질 것만 같았다. 혹은 바람에 흩어져 하늘로 날아가 버리거나. 하필이면 당신 작업복이 쪽빛인지라 그런 쓸데없는 감상이 들고 마는 것이다.

  악마기사는 여태 말이 없다. 먹과 물로 얼룩진 화폭에 관심조차 없는 모양인지 그저 공허하기만 하다.

 

  “나리.”

 

  그래, 이 공허, 이 괴리감.

 

  “나리.”

 

  이 섧음.

 

  “나리.”

 

  이 고독.

 

  “나리.”

  “뭐냐, 왜 자꾸 부르지.”

 

  그래. 이래서 나는 당신의 그 깊고 파란 우울이 싫은 것이다. 언제나 미련 한 줌 남기지 않고 훌훌 털고 떠나 버릴까봐서. 매정한 척 모질게 구는 주제에 끝까지 모질어지지 못할 만큼 다정하여서.

  나는 당신 무너지는 꼴이 보기 싫다.

 

  “있잖아요, 나리. 수묵화는 한 번 그리고 나면 돌이킬 수 없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나리는 어떻게 그렇게 휙휙 그리나 궁금해서요.”

 

  사이.

  그는 잠시간 말을 고른다. 이윽고 천천히 잇는다.

 

  “수묵화는 원래 우연과 의도가 조화를 이루는 그림이지. 그중에서도 우연이 더 비중이 큰 편이고.”

 

  그는 알아챈 것일까. 이 어린 것이 그림에 대해 물은 게 아니란 걸.

 

  “세상은, 그래. 대명장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있지. 뜻대로 되는 것은 많지 않고 그럴 리 없다는 믿음은 무용해.”

  “…그래서요?”

  “그 불확실과 우연과 실수가 두려워 백지로 남겨두느니, 차라리 후회 없이 선을 긋는 게 낫다. 그 뿐이다.”

 

  신중함과 과감함 중에 과감함을 택했다. 그런 말인가. 그러나 데스브링거는 그 아래로 알알이 깔린 내심을 읽어내고 만다.

  바보 같은 겁쟁이 기사님. 그건 그냥 선택의 순간에 내몰려서 함부로 내지른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느리게, 묵직하게 먹이 번진다.

  눈물같다.

  곧 겨울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새카만 겨울비가.

 

7.

 

  한겨울, 얼어붙지 못한 비가 내리는 밤.

  어둑한 비가 내려 세상의 윤곽을 지워버리고 만다. 그 무엇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흔들리고 흐려지다 무너지고 만다.

  번진 수묵 같은 세상 속에서 본래의 윤곽이었을 당신을 찾으려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그득한 물안개에 결국 고래를 떨구었다. 뛰어다니며 물웅덩이를 잘못 밟기라도 했는지 척척히 무거워진 바짓단이 다리를 붙잡아 내린다. 마치 이대로 녹아 물웅덩이 속에 스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울이 전염되었나, 아니면 제가 본래 지닌 우울인가.

  불현 듯 그 망치고 말았던 수묵이 생각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나리, 정말로 어디에 계신 거예요….”

 

  평소에 어지간한 잡귀는 근처에 얼씬도 못하는 이이다보니 휘하의 귀신들을 푼다 한들 추적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 특성 탓에 어느 정도의 반경 안에 있는지 짐작 정도야 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글쎄다. 그 반경은 참으로 넓어서 그 안을 혼자 다 뒤지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데스브링거는, 어린 칼잡이는 늘 그랬다.

  무언가 손 써볼 힘조차 없어 제 소중한 것들이 떠나는 것을 멀거니 눈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오래 전, 그의 친구 에밋의 넋이라도 찾고자 귀신감찰관이라는 이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에도.

  시신이 남아있던 탓에 무연고 장례까지 치뤘음에도 그러했다. 빈자리에 흔적만 남은 온기를 더듬어 찾다가 정작 그 온기의 주인마저 놓치곤 했다. 그 후로도 일곱 번의 이레가 지나 이제는 저승에서조차 형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멍청하긴.

  조소는 쓰고 후회는 아리다.

  이번에도 악마기사에게 귀명부 따위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자꾸만 헛된 손짓을 하고 만다. 해묵은 섧음은 기어이 청년의 발을 붙들어 매고 만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어떻게 해야 앞서간 사람들을 뒤쫓아 잡을 수 있나요….

  또 다시 남겨지고 싶지 않아.

  빠앙-

  우울의 염은 오래가지 않는다.

  소란하기 짝이 없는 빗줄기를 뚫고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날아들었다. 빵, 빵, 빵, 몇 번이고 짧게 끊어 치는 소리가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처음엔 다소 놀란 탓에 펄쩍 뛰었던 데스브링거도 이쯤 되니 저 경적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뭘 길거리 한복판에서 멍하니 서있어 이 돌대가리 후드 자식아!”

  “그러는 댁이야말로 동네 시끄럽게 뭐하는 짓이에요?”

  “네 목청이 더 우렁차서 동네 전체가 울린다, 인마! 청승 떨지 말고 어서 타!”

 

  아까 전에 샌님을 만나고 오면서 다른 이들에게도 연락을 돌린 바 있었다. 사실 연락을 돌릴 때만 해도 교수님을 제외하면 확신이 없었는데-마이스터는 새벽에 전화질이라 짜증내고 베르세르크는 악마기사에 한해서는 방관하는 감이 있었다.-이리 득달같이 뛰쳐나온 행색을 보아하니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근데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겁니까요?”

  “그 새끼 찾으려면 한 군데 밖에 더 있냐?”

 

  급히 차에 올라타며 묻자 연구실에서 산 채로 건져진 꼬락서니의 마이스터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당연히, 바다로 가야 할 것 아니야, 두개골이 보관함인 자식아!”

  “아니, 그 바다가 얼마나 넓은데요?”

  “너는 나라는 인맥을 꽁으로 뒀냐? 연락까지 했으면서? 있으면 써먹을 줄을 알아야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자식아!”

  “뭐요 X발? 내가 댁처럼 최첨단 장비 두르고 다니는 줄 알아요? 이래서 더러운 브루-주아 개돼지 특권층들이란!”

  “너 그거 요즘 공부했지?”

  “그런뎁쇼? 틀린 말도 아니면서. 왜요? 찔립니까?”

  “어이구, 무식한 놈이랑은 말 섞기도 싫다. 삼투압으로 나까지 무식함이 섞이는 것 같아. 근데 그 수녀님은 어디 가고 너 뿐이야? 지금쯤 합류한 줄 알았더니.”

  “샌님이요? 어디 들렀다가 올 데가 있다고 먼저 가라 하던데… 만났습니까요? 그리고 댁은 지능에 대한 기대치를 평균 이하로 낮출 생각은 없습니까? 지 잘났다고 콧대가 아주 에베레스트야.”

  “내가 왜 굳이 눈을 낮춰야 해? 여튼, 수녀님 나한테 몇 가지 좀 도와 달라 하고 너 찾아서 픽업해 달라 했어. 그 뒤로 딱히 연락 없고.”

  “…진짜 뭐야?”

  “이유 따지기 전에 그 근육뇌 자식 찾을 생각부터 해. 일단 빗물부터 닦고! 내 차 시트 더럽히면 죽여 버릴 거야! 다 닦으면 이거나 먹고!”

  “…뭡니까, 이거? 거 성질머리 아주 고우시네.”

 

  마이스터가 마른 수건이며 물티슈, 초코파이며 사과 주스 따위를 줄줄이 내던졌다. 데스브링거는 그것들을 받아들곤 오묘한 표정으로 도무지 종잡지를 못할 싹퉁바가지 세기의 대천재 되시는 귀-족 대명장 나으리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흠뻑 젖었으니 수건이야 그렇다 치자. 한데 초코파이와 사과 주스는 대체 왜?

 

  “수녀님이 부탁했어. 너 비 맞은 것도 걱정인데 많이 놀란 것 같아서 주려던 거 깜빡했다고.”

  “둔탱이 벽창호가 웬일이야….”

 

  제 속을 읽은 것처럼 날아오는 대답에 열없는 목소리로 뇌까렸다. 솔직히 그 샌님은 이제 온갖 달달한 것들로 저를 조련하려는 겐가 의심마저 가지만…. 뭐 어떻겠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 서툴기만 한 사고뭉치가 저를 생각해서 챙겨주는 건데.

  이런 다디단 감정은 귀한 것이다.

  그는 이 감정을 낯설게 여길 뿐 받아들일 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안전벨트만 대강 매고 물기를 털어내는 사이 타이어가 긁는 소리를 내며 차가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거 진짜 배려 없네. 그 스릴 넘치는 속도감과 성마르기 짝이 없는 난폭 운전에 물기 닦는 것도 포기한 데스브링거가 소래소래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도 속도위반 딱지 뜯을 거냐고, 미친 양반아!”

  “감시 카메라 다 꿰어 뒀어, 정보상 칭호가 아까운 놈아!”

 

  물론 차 안이 터질 듯 쩌렁하게 울리는 것은 제 알 바 아니다.

  달리는 동안 우울을 떨구고 오기라도 했는지 심장 부근이 가벼웠다. 이대로라면 아무래도 좋단 생각마저 든다. 뾰족한 대책 따위 없더라도 괜찮을 것만 같아서. 배려라는 이름의 방관 이전에, 눈치로 넘겨짚기 이전에 그저 당신에게 부딪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라리 이 호쾌한 질주가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어둠 속으로 어떤 마음을 실은 차가 질주한다.

 

8.

 

  “나는 이 땅을 떠나지 못할 팔자다.”

 

  거절은 뜻밖에도 선선해서, 아크메이지는 그의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봉인은 풀린 것 아니었나?”

  “그건 나를 그 사당… 정확히는 산에서 풀어놓은 것뿐이다.”

  “허면, 자네 말뜻은.”

  “바다에 묶여있지.”

 

  설명은 불친절했으나 이런 분야에 빠삭한 아크메이지는 속뜻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제 육신 속에 봉인된 지귀 탓에 바다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리라. 혹여나 지귀를 통제하지 못하고 주변을 불바다로 만든다 한들 바닷가 근처에 있다면 불은 금세 잡힌다.

  옛 전설 속에서 불귀신을 푸른 바다 밖으로 내쫓았듯.

 

  “…내 자네의 뜻을 알겠네. 아쉽군. 아이들이 자네와 모처럼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난다며 기대했는데.”

  “그놈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교수는 대답 대신 흔흔히 웃기만 했다. 저리 모난 말만 하면서도 인퀴지터와 데스브링거, 그 두 아이만 보면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이 저 치였다. 아마 그의 사정만 아니었더라면 흔쾌히 이번 의뢰에 따라 나서 주지 않았을는지.

 

  “어떤 의뢰인지 묻지 않는 겐가?”

  “그 사제 녀석의 일이지 내 일은 아니다.”

  “한결같아서 좋군.”

  “교수, 너야말로 한결같이 따라나서고 있고.”

  “귀신도 악마도 보지 못하는 민간인이 왜 이런 일에 끼어드나 궁금한가?”

 

  침묵은 곧 긍정이다. 악마기사는 말없이 턱짓만을 해보였다. 어디 지껄여 봐라.

 

  “내 한때 사랑했던 이가 있네. 우리는 생을 증명하려 했었지. 오만하게도.”

  “망자의 소생이라도 꿈꿨나.”

  “바로 맞췄네.”

  “그렇다면 그건 오만이 아니라 멍청함이라 불러야겠군.”

  “하하… 확실히 그럴 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불가능에 뛰어드는 어리석음도 인간의 특권 아니겠나.”

 

  아크메이지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아 지나간 젊음을 회고했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소슬한 바람이 흰 머릿결을 훑는다. 날이 좋았다. 그때도 이런 사늘한 바람이 불었다. 그들 사이에 덩그러니 펼쳐진 책의 낱장이 후르르 넘어간다. 조금 전까지 악마기사가 읽던 것이었고, 한때 교수의 연인이 그녀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는 실패했고, 그이는 삼도천을 건넜으며, 나는 내 생의 갈래 중 하나를 갈무리하고 돌아왔네.”

 

  한 장, 한 장 넘어가던 페이지는 이윽고 처음으로 돌아가 어둡고 붉은 내지를 내어보인다. 아크메이지는 그 책을 덮어버렸다.

 

  “해서 나는 내 실패를 다시 증명하고 싶은 걸세.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순리가 있음을,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싶어.”

  나붓이 곡선을 그리는 눈매가 시푸르다.

  이것이 늙은이의 아집이고 무엇이라도 붙잡으려 드는 발버둥임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충분히 세월을 겪고 편협해진 시야라는 것 또한 너무나 잘 알았다. 내 삶이 허무하지 않다는 초라한 머릿속 세계를 지키기 위한 발버둥.

 

  “이런 쪽에 몸담은 자네로서는 내가 우스워 보일 것을 아네. 그래도 너무 박정히 굴진 말아주게나. 늙어서 느는 것이 옹고집 뿐이거든.”

 

  생각해보면 자네가 나보다 긴 세월을 살았을 테니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 꼴인 겐가. 실없는 농을 던져도 사내는 그저 고요했다. 제 나름대로 경청의 표현임을 알아들은 교수가 입 꼬리를 살며시 당겨 올렸다.

 

  “차 한 잔 더 들게.”

 

  젊은 목동의 낯을 지닌 신은 잔을 거절하지 않았다. 다소곳이 흰 두루마기의 소매를 정리하고 찻잔을 받쳐 든 모습은 정갈하기만 하다. 찻물을 엎질러도 금세 깨끗해질 것을 알면서 옷을 갈무리하는 습관은 그가 한때나마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평소에도 딱히 신처럼 느껴지진 않았으나, 어쨌든.

  생각해보면 자네는 한낱 인간이었을 시절에는 어떤 이였을까. 인퀴지터처럼 신을 받을 그릇이었을까. 혹은 무과에 응시할 준비를 하던 무인의 아들이었을까. 혹은 화원이 되어 이따금씩 그리 했듯 수묵을 쳤을까. 알 수 없다. 물어본다 한들 말해주지도 않을 것이고.

 

  “참. 자네 방은 마음에 드는가?”

 

  이렇다보니 결국은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가는 것이다.

 

  “쓸데없는 질문을.”

  “만족한 것으로 알겠네.”

 

  본래라면 이렇듯 지박령 마냥 한 자리에 묶일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대로 세상을 누비며 제 생을 피워냈을 것이다. 제 묘 자리를 미리 찾아두고 붙박이는 게 아니라.

  머물 곳이 필요해졌다는 말에 제 집의 한켠을 선뜻 내어준 것은 그런 사유였다. 한 뼘 땅뙈기 한 칸 방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오롯이 악마기사만을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그의 업도 과오도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구태여 가구라던가 자잘한 장식품 따위를 사서 넣어준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악마기사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교수.”

  “응? 왜 그러나?”

  “…너는 진실 앞에서 눈감지 않을 자신이 있나.”

  “나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이네만… 자네 말하는 것이 그 쪽은 아닌 듯 하군.”

  “말꼬리 잡지 마라.”

  “성마르긴.”

 

  재고하면 격식 차려 말하는 데다 요약정리도 안 되어서 구구절절 말이 긴 것은 악마기사 쪽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것은 조용히 묻어두기로 했다. 아크메이지는 차를 한 모금 홀짝이며 답을 이었다.

 

  “그 진실이 끔찍한 것이라면, 글쎄다. 나 또한 눈감을지도 모르지. 나는 나 자신을 그리 신용하지 않는다네.”

  “그런가.”

  “늙을수록 변화가 힘겨운 법 아니겠나.”

  “함에도 너는 찾고 있지 않나.”

  “그것이야말로 내 편협함의 정수인데도?”

  “때로 알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것들이 있지.”

 

  악마기사가 덮어둔 책을 집어 들며 뇌까렸다. 이것은 그 나름의 위로인가. 의도를 짐작하긴 힘드나 그 아래 깔린 옅은 마음은 그 자체로 오롯했다.

  다시금 오전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가을이 손짓하는 모양이다. 그 서슬에 희게 바랜 옷자락과 머리칼이 나부꼈다.

 

9.

 

  이제 와 그녀는 악마기사의 방에 발을 들인다.

  그가 이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얼굴을 디밀어 보였다. 주인이 부재한 방은 스산함만이 남아 공허의 냄새를 풍긴다. 아크메이지는 차라리 여관이나 손님방이 이보다는 생활감이 있을 것 같단 생각에 손끝으로 책상 위를 살살 쓸었다.

  악마기사를 찾으려면 한시가 급하거늘 구태여 이곳에 들른 이유는 무엇인지. 방에 무슨 단서라도 남아있다고 생각한 겐가. 여타 숱한 영화 속에서 그러했듯이.

 

  “아.”

 

  그러다 문득 책 하나가 눈에 띈다. 일전의 그 책이었다. 다른 데 두었을 리 없는데, 하고 찾아 헤매다가 악마기사의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안심했던 그 책. 어쩌다 찾았을까 싶다가도 내지 속의 그것을 보았을까 싶어 입술만 오물거리다 읽어도 괜찮다 고개만 주억인 책. 죽은 연인이 선물했던 것.

  표지를 넘기면 드러나는 것은 예의 그 어둡고 붉은, 포도주 빛깔이 내지이다. 내지에는 흰색 잉크로 빛바랜 사랑의 언어가 적혀있다.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어요.

  그리고 그 위로, 연원을 모를 부적이 하나. 작은 쪽지도 하나.

 

  “…이건.”

 

  괴황지에 경면주사, 주술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기엔 또 묘하게 양식이 다른 것.

  -꿈은 꿔주지 못하겠고, 시선은 함께해 볼 수 있을 듯 하여.

  예스러운 필기체다. 아크메이지는 이 글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자네는, 언제부터….”

 

  무엇을 내다보고 준비하고 있던 겐가. 뒷말은 까무룩 먹먹한 감정에 먹혀 입 밖으로 채 다 새어나오지 못한다.

  부적이 어떤 효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일언반구도 없었으나, 현명하게 늙은 교수는 이것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교수 자신이 직감과 같이 증명 못할 과정을 그리 신용하지 않는 부류라도 그러했다.

 

  “진실을 보길 원하는 건가? 내가 무슨 선택을 할지 궁금한 겐가. 아니, 자네라면 필히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준 겐가.”

 

  안명부.

  이승에 속하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부적. 부적을 쓴 이의 시야를 잠시간 빌려주는 것. 부적의 소지자가 영력 한 줌 영안 한 쪽 없는 일반인이라도 그러했다.

  그러니, 무엇일까. 그가 진정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이것을 쓰고 진실을 마주해야 자네의 믿음에 부응하는 것인가?”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물음이다. 당연했다. 애초에 악마기사 본인부터가 대답이 불친절했고, 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이길 선호했으므로. 하물며 이 자리에 없는 이가 무슨 수로 답을 해준단 말인가?

 

  “자네의 의도가 어느 쪽이건… 이제 내 편협함을 알아갈 때가 된 것을 알겠네.”

 

  그러나 그녀의 손에는 이미 부적이 들려 있었다.

  청은빛 눈이 유독 새파랗게 빛났다. 낯의 바다처럼 물결치는 파랑이었다.

 

10.

 

  “넓게 봐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그날은 말씨가 유달리 사근사근했다. 혹여나 그의 안에 잠든 불의 악마가 악마기사의 입을 빌어 속삭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로. 그러나 이내 악마기사는 제 생각이나 인식보다 훨씬, 훨씬 다정한 이라는 것을 상기하곤 고개를 홰홰 저었다.

  게다가 저 말은 일전에도 들은 바 있지 않았나. 물론 그 말이 날 귀찮게 하지 말고 할 일은 알아서 찾으라는 투의 삐딱함이긴 했어도.

 

  “제가 무언가 놓친 게 있습니까?”

  “방금 내가 한 말을 뭘로 들었지?”

  “들었으니 이리 자문을 구하는 것 아닌가요.”

  “그게 내 방식을 모방하라는 소리는 아니었을 텐데.”

  “무엇이든 겪어보고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이나 못하면….”

 

  짧게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못마땅함이나 귀찮음 따위보다는 염려에 가까워 보이노라 말하면, 당신은 무어라 할까. 쓸데없는 감상이라 말하려나.

  뭐, 어쨌든. 인퀴지터는 순순히 악마기사의 말을 들어줄 요량은 없었다. 이 어리고 미욱한 사제가 보기에 악마기사의 방식들은 꽤나 보고 배울 점이 많아 보였으므로. 게다가 인퀴지터는 사실 그리 말을 잘 듣는 이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귀담아 듣기는 하되 정작 행동할 때는 제멋대로 굴곤 하는 청개구리에 가까웠다. 그런 와중에 배울 수 있는 장점들은 죄 속속 빼내어 제 것으로 만드니 그렇지. (물론 욕설도 따라 배우는 스펀지긴 했다.)

 

  “악마기사. 그거 아십니까?

  “…무엇을.”

  “저는 당신을 내심 제 선생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들을 가치도 없는 흰소리군.”

  “진심인데도요.”

  “아서라. 너 같은 제자를 드리면 스승 되는 놈은 속 깨나 푹푹 썩을 거다. 나는 제자 같은 것 들일 생각도 없고.”

  “하지만 남들은 우리가 닮았노라 입 모아 말하곤 합니다.”

  “너는 타인의 말에 휘둘릴 만큼 줏대 없는 팔랑귀였나.”

  “한 두 명이 그리 말하면 모르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은 이야기를 하면 신빙성이 있지 않습니까?”

  “외눈깔은 내가 아니라 그네들인가보지.”

  “외눈깔이라니요.”

  “외눈박이들 사이에서 홀로 두눈박이인 이의 고충이란….”

  “그건 어떤 비유입니까?”

문학적 비유는 여즉 어려웠다. 보고 자란 것이 성경이다 보니 종교적인 관용구들이야 빠삭하다마는, 그 외의 문학적 비유는 무지한 탓이었다. 이렇다보니 종종 남들이-특히나 악마기사-쓰는 표현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인퀴지터는 부러 악마기사를 지그시 응시했다. 어서 설명해달라는 무언의 재촉이었다. 이내 저 빼고는 달리 설명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악마기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방인이나 소수자의 소외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허면 지금 당신은 세상에서 소외감을 느낍니까?”

“어째서 이야기가 그리로 튀는 거지?”

“왜냐니요. 당신이 그런 비유를 쓰지 않으셨습니까.”

“이건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니, 됐다.”

기사의 친절함은 그 정도가 한계치였는지 얼마 안 가 설명을 포기하고 말았다. 인퀴지터는 해답을 얻기는커녕 더욱 혼란해진 머릿속만 남았고.

“나는 네가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한다. 그 정보상 녀석도 그렇고.”

“어째서입니까?”

“청맹과니는 하나면 족하다.”

“당신의 말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말 그대로다. 맹목은 눈을 가리지. 많은 것을 놓치게 만들고.”

벌써부터 맹목에 사로잡혀서 좋을 것 하등 없다. 내뱉는 말이 차다. 인퀴지터는 곰곰이 대화들을 연결 지어 본다. 이 맹목과, 넓게 보라는 말은 동일한 말인 걸까? 혹은 제가 여태껏 놓친 것들이 있는 것일까. 아직 무엇인지 짐작키는 어려우나 자신이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생각만은 여실하게 든다.

이것 보세요. 저는 아직 배울 것도 많고 갈 길이 깜깜 먼 어린앱니다. 이런 제가 어찌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 따르지 않을 수가 있나요.

가슴 아래에서 장미 묵주가 불온한 빛을 뿌렸다. 괜스레 그것을 쥐고는 손아귀에 힘을 준다. 손바닥을 찔러오는 화득한 감각이 차츰 정신을 깨운다.

 

11.

 

가로등마저 깜빡거리는 밤거리, 비 쏟아지는 하늘. 세상은 어둑하기만 하다.

그 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뿌리는 것은 어린 사제의 장미 묵주뿐이다. 처음 그들이 만났던 날에 족자 속에서 홀린 듯 뽑아내었고, 그 뒤로 제 것이 되었던 장미 묵주. 신성력을 불어넣으면 검이건 방패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성당의 성유물.

기실 그녀로서는 아직도 악마기사가 무슨 생각으로 이것을 저더러 쓰라고 했었는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제게 박혀 있던 봉인의 무기를, 저를 제압할 힘을 지닌 이에게 건네는 것은 당최 무슨 의미인가.

아니, 아니, 아니다.

제 아무리 둔치인 인퀴지터라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았다. 모르는 쪽이 천치일 것이다.

그녀로서는 그저, 그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제 스승이자 우상이며 동경하는 이의 등이 사실 벼랑 끝을 향해 달려가는 청맹과니의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받아든 날에 이미 제 마음 깊은 곳의 의구심은 어렴풋이 그것을 알아차렸음에도.

그의 강단이 사실은 선택지 하나만을 남겨둔 맹목과 아집임을.

그의 결단이 사실은 어떻게든 해보고자 발버둥치고 발악하다 그만둔 흔적이었음을.

그의 신념이 사실은….

“악마기사….”

결국 되뇌고 되뇌던 이름을 내뱉는다. 곱씹음이 깊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한 이의 탄식이다.

“전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나는, 무엇을 보지 못하고 놓친 것입니까….

인퀴지터는 잎맥만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무와 숲은, 아직 내다보기에는 채 다 자라지도 못하였고 앎도 적은지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에 와 무엇인가를 알아내었다 한들 여전히 그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뿌리를 알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해 뛰어갈 뿐.

“어린 사제야!”

“베르세르크…!! 오셨습니까!”

“전우 찾으러 어서 가자!”

“네…!! 그런데 어디로 갈지 아시는 겁니까?”

“대명장과 어린 사냥꾼이 해안가 절벽으로 가야 한다고 연락 왔다. 너 연락이 안 된다고 둘 다 찾아와 달라 부탁해서 이쪽으로 온 거다!”

아, 연락. 생각해보니 핸드폰을 놔두고 온 것 같았다. 어쩐지 주머니가 가볍다 싶더라니 그것 때문이었나. 유달리 귓가가 조용해서 허전했던 것도.

“…그런데 저는 어떻게 찾은 겁니까?”

“다 아는 방법이 있다.”

…라고 말하지만 베르세르크 특유의 기감이겠거니 싶어 일단 넘겨 두었다. 베르세르크는 영안도 트이지 않은 사람이 직감 하나는 거의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발달한 탓에 때로 아무것도 보지 않고도 무언가를 알아맞히거나, 예지에 비견될 언행들을 하곤 하는 것이었다. 마치 인퀴지터 자신이 신의 목소리를 듣고 계시를 받들어 예언을 실행하듯.

“감사합니다, 베르세르크. 솔직히 저 혼자서는 많이 막막했거든요.”

“고마울 것 없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네?”

“어린 사제가 말하지 않았나? 전우가 도와달라고 했다고.”

“네? 네. 분명… 그리 말하셨습니다만.”

“그걸로 충분하다.”

“네?”

베르세르크는 구태여 더 부연을 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결국 인퀴지터는 베르세르크에게 손이 잡혀 휘적휘적 바다까지 뛰어가게 되어버렸다. 함에도 아까 전처럼 매양 막막하거나 갈피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저, 베르세르크.”

“응? 무슨 일이냐?”

“이런 순간에 외람되지만…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괜찮으니 말해줘라.”

“당신은 어째서 일부러 트인 것을 막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트인 것을 막았다니?”

“당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귀신이건 악마건.”

“….”

“음, 어. 곤란한 질문이었다면 굳이 답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서 가죠!”

대체로 쾌활하고 저와 그 뺀질이 녀석, 하물며 악마기사를 대함에 있어서도 호쾌한 편인 베르세르크가 침묵하자 자신이 물어선 안 될 것을 물었나보다 싶어 뜨끔해진 인퀴지터가 황급히 말을 돌렸다. 나는 왜 하필 이런 때까지 눈치가 없어선…!

“아니다. 어린 사제야. 곤란한 게 아니다. 나는 그냥…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무엇을요?”

“우리 언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아.

짧은 탄식이 잇새로 흐른다. 아주 짧은 문장이었으나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나 그들 일행처럼 저승의 것들을 보는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이었으므로. 인퀴지터는 직감적으로 이해하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밤 비 내리는 거리를 익숙한 품새로 달린다. 사제는 달리면서도 어쩐지 전에도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생각한다.

해안가가 보였다. 시야의 끝으로 밤보다 어둑한 검은 불꽃이 노랗고 푸른빛으로 날름거리며 피어나는 것이 걸린다.

아, 당신. 거기에 있군요.

인퀴지터는 서슴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흰 파도꽃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12.

 

호구 자식.

그만 좀 고집 부려. 너도 네가 한계라는 것, 잘 알고 있잖아? 천년 가까이 버텨 왔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지. 왜 아직까지 날 놓지 못해서 안달이야? 넌 할 만큼 했다. 저 애송이가 나에게 으르렁거리던 시간만큼이나 오랫동안 날 잡아 눌렀어.

눈물이 마르다 못해 자기가 지귀가 될 지경인 주제에. 그리움에 짓눌려서 마음에 불이 붙어버린 주제에. 사랑 때문에 불타고 있는 주제에! 아직도 아집 내세울 힘이 남았어? 웃기는 놈일세.

난 말이다. 너 같은 놈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너나 저 애송이나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지켜내고 싶어 하는 단 하나만은 꼭 쥐고 버틴단 말이야. 지치지도 않아. 이쯤 하면 다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고 내던진단 말이다.

…작작 울어! 나까지 바다에 잠겨 죽게 만들 셈이야? 아니, 애초에 나 죽으라고 허구한 날 바다에 붙박여 있었으니 다를 것도 없나?

하하, 친애하는 대웅성좌님. 이쯤 해둬. 알잖아. 이번 생도 실패할 거야. 저들은 이제 100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우리 심장에 칼을 꽂고 이 깊고 푸른 바닷물에 우리 시체를 처박아 해저에서 뼈조차 남기지 않고 삭아버리게 만들 거라고. 이번에는 사당에 곱게 봉인되지도 못할 거야.

아직도 저들을 믿어? 너 혼자 오롯이 기억하고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지금을 살아가는데? 너 혼자 과거에 고여서는 이렇듯 고통 받고 있는데? 불합리하다 생각하지는 않아? 바다 바깥을 봐. 저 신의 번견 녀석이, 이단심문관이 달려오고 있잖아. 오, 세상에. 묵주까지 야무지게도 챙겨 오셨네. 너와 내 가슴에 찔러넣었던 그 검 말이야! 널 죽이러 오고 있어. 이번 생에야말로 기어코 끝을 보기 위해 온 거라고. 이 기나긴 유배를 다른 의미로 끝내줄 사람이 오고 있단 말이다.

끝까지 그럴 텐가?

기어이 불귀신, 아니, 아니, 타락한 이무기 하나 끌어안고 명예롭게 익사라도 하시게?

집어치워. 그래봤자 네 그 눈물 나는 헌신 알아줄 이 하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나와!

 

13.

 

꺼질 것은 너야.

네 불꽃은 푸른 바다 바깥으로 내쫓겨서 영영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될 거야. 내가 그리 만들 거니까.

 

14.

 

“악마기사!”

아, 드디어.

드디어 당신에게 닿았어.

인퀴지터는 밤조차 살라먹을 듯 싯싯거리는 불꽃을 끌어안았다.

 

15.

 

“뭐 하는 짓이야!”

사내는 다급히 저를 부둥켜 안아오는 아이를 떼어내었다. 지금, 불이 붙고 있는 시점에 겁도 없이! 화상이라도 입으면 어쩌려고! 바다 속 한가운데가 아닌 이상에야 잘 꺼지지도 않는 불꽃이다. 그런 아득하고 어둑한, 태고의 분노. 사내는 그 불이 얼마나 강력한지, 너무나 잘 알았다. 얼마나 탐욕스럽고 저열한지도.

“돌아가. 어서!”

“그럴 수 없습니다.”

“머저리 소리 듣더니 진짜 머저리가 되기라도 했나?”

“그런 모양입니다. 저는 이제껏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천치였지요.”

아이, 인퀴지터는 간신히 붙든 저를 놓지 않겠다는 양 점점 더 강한 힘으로 사내를 바투 안아왔다. 옷깃이며 손끝으로 불꽃이 옮겨 붙고 있는데도 신경 쓰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신성력 탓에 작열통에 익숙한 아이라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신성력은 치료라도 해주지, 이 불길은 신성력조차 제대로 치유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안 돼. 안 돼. 또 다시, 이렇게 되어선 안 돼. 나는 몰라도 너는 살아야지. 최선의 결말은 몰라도 하다 못 해 우리 모두 공멸하는 결말만은 피해야지.

“가라고, 말했다!”

“싫습니다!”

“지금이 고집부릴 때인가? 당장 돌아가. 너까지 휩쓸려서….”

“저는 이런 결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100년 전에도, 지금도요. 이게 우리의 최선이 아니길 바라요.”

“…방금. 뭐?”

한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분명 제 귀에는 이상이 없건만, 제 머리는 말뜻을 알아듣는 속도가 더뎠다. 마치 톱니 사이에 돌부리라도 걸린 양 삐걱이며 느릿하게 돌아간다.

“이제껏, 저는 제 미련이 무엇인지도, 제가 이 생에서 행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었지요.”

“….”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보는 눈을 지니고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했어요.”

“너.”

“외눈박이의 세상에서 홀로 두 눈이셨으니 얼마나 힘에 겨우셨겠습니까….”

설마, 기억을 하는 건가? 그럴 턱이 있나. 환생까지는 확신을 했어도 기억을 되찾으리라곤-

“미안합니다. 그때 약조를 지키지 못해서.”

기억을 하리라곤….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겠노라, 그리 약조를 했었는데. 제 손으로… 우리가….”

이런 건, 생각을 못했었는데.

“하니 이번에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앞을 막아서는 게 아니라 곁에 있어 보이겠습니다. 그러니.”

파도 자락이 그들을 덮고 휩쓸었다. 스산한 겨울비가 후드드 떨어져 내리는데도 불꽃은 꺼질 줄을 몰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풍랑 속에서 서로를 놓지 않겠다는 양 굳건했다.

“그러니, 지지 말아요, 제발….”

당신 홀로 스러지지 말아요.

빌어먹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런 언어도 자아낼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 방황하던 손이 이내 저를 끌어안은 아이를 마주 안았다. 아주,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타인의 체온이다. 36.5 도. 인간의 평균적인 정상체온.

흩날리는 검고 잿빛에 붉은 머리칼들 사이로 해안에서부터 이곳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보였다. 아, 그들이다. 아크메이지, 데스브링거, 베르세르크, 마이스터….

하나 둘 씩 체온이 덧입혀졌다. 마치 이대로 숨을 눌러서 불꽃을 삭이기라도 할 것인 양 애처롭고 굳건한 체온들이다.

사내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본래라면, 이대로 파도 속으로 휩쓸려 홀로 스러지려 했던 것도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들이 저를 놓아주려 하지 않을 때에는.

나는.

“…너희는 아마 세계 제일의 천치들일 거다.”

“부정을 못 하겠군, 그래.”

“베르세르크는 원래도 이랬다만?”

“난 천치가 옮았다. 같은 취급 사절 좀.”

“이 양반이 이런 때까지?”

“뭐 어쩌라고?”

허탈한 웃음마저 나와 버렸다. 이제 와서 밀어내니 뭐니 하는 일련의 행위조차 부질없을 듯 했다.

“곧 파도가 다시 올 거다.”

하니 눈을 감아라. 뭍으로 가야지 않겠어.

작게 뇌까리는 말은 유달리 무게감이 여실하다. 확신의 무게감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할 수 있게 된 이의 무게감.

사내는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서로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고 거두어가지 않았다.

이윽고 파도가 그들을 삼켰다.

00:00 / 02:02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