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제 巫祭 - 오렌지샥슈카
※글에서 호칭을 바꾸기 위해 임의로 사용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착귀갑사(捉鬼甲士) - 착호갑사에서 호랑이를 빼고 귀신을 넣어 바꿨습니다.
무승(巫僧) - 도교 대신 무당 무巫를 붙여 만든 것으로 티베트 본교에서 영감을 얻었으나 실제 단체 및 역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마지막 단란에 변형하여 인용된 문구는 오구풀이에서 따온 것입니다. 오구풀이는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남은 이들의 수명과 복을 이어가도록 비는 사령제 씻김굿의 서사무가로, 바리신 전설의 내력을 담고 있는 무가입니다.
변형된 부분은 마지막 구절로 원문은 서천이 아닌 ‘시양산으로 가신다고’입니다.
※작성자는 그냥 신화와 전설을 사랑하는 무교입니다.
염병, 이게 뭔 개 같은 꼴이야!
[⋯난 몰라. 네놈이 해결해라, 버러지.]
웃기지 말고 손 보태. 젠장, 연결이 헐거워지다 못해 이상한데 붙었어. 이래선 다 찢어지겠군.
[뭐? 소리는 들으실 수 있는 상태이신가? 아니, 차라리 그냥 가시게 두면⋯.]
내 말 뭐로 들은 거냐, 애송아! 지금은 보낼 수도 없어! 이상한데 엉겨 붙은 상태라 그러면 터진다!
[⋯! 이 미친 새끼⋯!]
卍
아아아아악
용사는 끔찍한 비명에 움츠러들었다. 저런 비명을 들은 적이 없었다. 여정 동안 악마기사는 단 한 번도 비명을 지른 적이 없었다. 그는 온몸이 너덜너덜하도록 다 뜯기고 찢겨도 신음 한 번 제대로 낸 적이 없었다. 소리를 질러야 마땅할 당사자가 죄 속으로 쓸어 넣고 삭히니 주변에서 대신 지르기만 했다. 실제로 들은 적 없는 처참한 고통.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니 저 고통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곳으로 달려오는 길, 산짐승들조차 비명만으로도 거품을 물고 넘어갈 정도의 참담함이다. 한 번의 절을 더 올린다. 백 팔 배는 이미 끝난 지 한참이다. 이번이 몇 번째의 새로운 백 팔 배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구할 뿐이다. 나무아미타불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부디,
아아아아아
부디 고통에 몸부림치는 저 혼을 불쌍히 여기어 주십시오.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절에서 제공해준 방석은 이미 땀으로 푹 젖었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므로. 자신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겨워하는 몸을 내리누르고 치료를 도울 수조차 없으므로.
아아아아아아악
본인이 원하지 않는 동정이라 하여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뿐이니. 촛불이 흔들거린다. 문이 덜컹거린다. 낮에 하늘이 심상찮았다. 밤을 새워 비가 들이칠 것만 같은 하늘이었다. 아까 낮에 망종은 구름 속도를 보니 곧 태풍이나 다름없는 폭우가 올 것이라 단언했다.
아아아아-
제 혼을 살라 세상을 구하려는 이가, 최소한 살아 숨 쉬는 동안 덜 고통스럽게라도 해주십시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새벽을 알리는 종이 친다. 뎅. 뎅. 뎅. 뎅. 마지막 종소리와 함께 비명이 사그라들었다.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촛불이 꺼진다. 바람에 몸이 휙 차가워졌다. 드르륵. 달칵, 탁. 샌님, 나리가, 샌님, 샌님!? 이번 절은 몇 번째였더라? 백, 여섯 번? 일곱 번?
의식이 끊겼다.
卍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卍
"갑사(甲士)분 육체의 상처는 전부 완치되었습니다."
대현자는 주지승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당장 그 몸이라도 완치되었다니 다행이었다.
"대현자께서도 아시겠지만, 겉의 상처를 전부 봉합한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당장 저희가 틀어막은 것에 불과한 것이니⋯ 착귀갑사(捉鬼甲士)로서의 본연의 사명은 이어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주지승의 말은 단호했다.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맞는 말이다. 머리카락의 반이 큰 재난을 맞아 일부만 새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새어버린 머리에 악다귀가 다시 깃들어 반만 검어진 것인지 모를 그 불쌍한 청년은 이제 영혼마저 줄줄 새고 있었다.
"통각이 없다고 하셨지요."
"예. 전투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통각을 잃은 것으로 진맥이 잡힙니다."
"지금의 통증은 그럼 정확히 어떤 연유로 느끼는 것입니까?"
"육체의 마지막 생존 본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증세는 알려진 바가 극히 적어 비술사들의 마탑에도 정보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승과 저승에 발을 걸치고 특별한 눈을 얻었거나. 또는 신체를 얻은 자들에게만 아주 희귀하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며, 그들 대부분은 이 정도로 증세가 악화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지요."
"⋯세상에. 나무아미타불.“
”전해지는 증세를 보아서는, 어쩌면 서천화원의 혼살이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보통 사람이 그곳에 갈 방도가 없으니 결국 손 쓸 도리 없이 떠나갔지요.“
끔찍한 이야기다.
대현자는 미간을 구기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절의 뒤편, 산을 더 올라야 있는 암자에 있는 청년은 아직 의식조차 돌아오지 않은 채다. 어린 용사도 새벽까지 백 팔 배를 올리다 쓰러졌다. 어린 도적이 소식을 전하려다 발견했다. 그 역시 피로에 지쳐 잠들었다.
그럼 투사의 상태는 괜찮은가? 아니다. 악마기사를 업고 달려온 투사는 그를 내려 두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의식불명이다.
사실상 실질 전투원들이 전멸했다. 당장 삿된 것 하나라도 이 절에 침입하려 든다면 그들은 아무 도움도 되어 줄 수 없었다. 이런 악귀 사냥에 이름난 절이라 한들 자신들을 노리는 것들은 지나치게 강했으므로 이러나 저러나 짐덩이다.
한숨이 또 터졌다. 주지승은 그 모습을 보다 조용히 합장을 하고 자리를 비워주었다. 생각 정리를 하라는 뜻이다. 여유 없이 퀭한 눈의 대현자는 어린 이들을 떠올렸다.
먼저, 가장 큰 문제인 청년. 악마기사. 착귀갑사(捉鬼甲士)- 이 땅에 단 한 명, 오롯이 마귀와 악다귀들만을 사냥하는 사명의 이름을 받은 이다. 그것이 스스로 원하지 않고 받은 이름이라 한들. 스스로는 그 이름 대신 악마기사라 한다 한들.
아니, 아니다. 그런 이름이 없는 팔자여도 평생을 저 주술진 속에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도화 가지와 금줄과 소금과 여덟의 강고한 무승(巫僧)들이 한시도 빠짐없이 영혼을 고정시켜야 하는 것이 삶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무슨 답이 있는가? 없다. 어디서 영혼이 새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왜 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당사자도 모를 것이다. 알아도 답해줄 리 없었다.
그는 모르거나 아는 것을 전부 무언(無言)으로 숨겼고 제 무언가를 꺼내 보이는 것이 무슨 세상 놀랄 역도의 사특한 짓인양 굴었기 때문이다.
오른팔에 들어앉았다는 악귀도 그렇다. 역대 같은 증세의 문헌에서 어떠한 답도 못 얻는 것은 그것 탓이 크다. 의아한 것은 그 대악귀는 그릇을 제법 아끼는 듯하였는데 지금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전 그의 부상에 마기가 튀어나와 회복시키고 간 것을 상기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영혼이 다 흘러가 비어버릴 몸을 노리나? 하지만 그릇의 육체가 죽으면 들어찬 것도 소거된다. 그것이 말도 안 되게 강해 저승차사는 걷어찰 수 있어도 천지가 천명하고 열 시왕(十王)이 지키는 세상의 규칙은 어길 수 없었다. 그러니 이 가정도 그리 맞지 않는다.
답이 없었다.
그럼 두 번째로, 용사. 아이가 기도를 올리느라 무리한 것뿐이니 시간이 지나면 쉬이 깨어날 것이라 크게 문제는 없었다. 스스로 지닌 성력이 몸을 치유하고 있을 터다. 더욱이 상제가 사명을 내린 용사가 아닌가.
⋯그럼 결국 문제는 하나뿐이군.
멀리서 장닭이 때도 모르고 우렁차게 우는 소리가 났다.
卍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卍
"⋯하, 사상자는."
"정신이 드십니까?"
"세상에, 나무아미타불."
"주지 스님을 모셔오겠습니다!"
"대현자도 모시고 오시게!"
손댈 수 없어 바싹 메마른 입술 사이에서 모래 가루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았는지 고개를 돌리려다 실패했다. 격통에 또 입술이 터져나가는 것을 개중 어린 승려가 보고 안타까워했다.
"가만히 계십시오. 아직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으십니다."
"⋯ ⋯."
돌아오는 시선이 탁하다. 승려들은 확신했다. 진맥을 볼 것도 없이 의식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은색 눈동자에 혼이 반쯤 비어있다. 저승길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다 해도 상태가 명백했다. 자리를 비운 둘을 빼고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마음을 좀 비우십시오. 영은 저희가 잡고 있으니, 육체의 고단함이라도 푸셔야지 않소."
"⋯ ⋯."
"수면초와 마취용 마비초들을 가져오라 이르겠습니다."
"⋯사상자는?"
기어이 저 답을 들어야 눈을 감겠군. 가장 나이 많은 무승(巫僧)이 속으로 혀를 찼다. 말 참 안 듣는 환자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들었소이다."
눈꺼풀이 툭 떨어져 감겼다. 승려는 합장을 하며 끌끌 혀를 찼다. 감당할 수 없는 비극으로 지나치게 빨리 너무 단단하게 경화된 생이 안타까웠다. 저러다 부러질 텐데. 기어코 부러져 작은 물품들로 돌아온 이들을 회상하며 술법의 경구를 외웠다.
아니, 이미 부러져 타버린 밑동의 잔향인가?
卍
암자의 문을 여니 냉기와 열기가 허공을 부유하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차갑고 뜨거운 게 한 번에 여기저기서 일렁인다. 개중 아주 일부 황금빛 덩어리 같은 것들은 악마기사의 심장 부근 위에서 조용히 나풀거렸다.
대현자는 주지에게 눈빛으로 물었으나 모르겠다는 고개저음만을 받았다. 방안을 채운 것중 가장 청년의 혼 같으니 그냥 저것이 맞으리라 여기기로 했다. 다른 두 가지는 악마거나 원한이거나 그러하겠지.
진법을 담당하는 이들도 나갔다. 벌레 우는 소리가 제법 커지고서야 대현자는 입을 열었다.
"이제라도 입을 열어 우리와 내가 몰랐던 것들을 말해주진 않겠지."
고요.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자네가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모르지도 않네. 다만 한 가지만을 원할 뿐이야. 우리의 여정에 그대가 계속 같이 하길 바라네."
정적.
"그때 내가 죽기 위해서 이러느냐 물었지. 알고도 물었네. 자네 같은 청맹과니가 세상에 더 없는 것도 아니고. 내 살아오며 좀 봤으니, 죽고 싶으나 자결할 수는 없어 그저 죽임당하기만을 바라여 그렇게 싸워왔음을 알고도 물었네. 이제 와선 그 물음조차 후회되는군. 그렇게 묻지 말았어야 했어, 그렇지 않나? 자네에게 고통을 확인할 게 아니라 손을 먼저 내밀었어야 했는데. 내 호의 위명이 쓸모가 없네 그려."
달칵.
등 뒤의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루를 푹 자고 있어난 어린 용사가 대현자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직 조금 피로한 낯이다.
"영혼이 새고 있다더군. 그때의 격통은 마지막 육체의 생존 욕구고, 지금 자네는 주술로 그저 붙잡아두기만 했을 뿐이야. 완치된 기록은 단 한 건도 없으니⋯."
"대현자님."
용사의 단단한 손이 대현자의 손을 붙잡아 내렸다. 미간이 지나치게 눌러 붉어져 있다.
"압니다. 알아요. 알지⋯. 말조차 조심해야 함을⋯. 저 이에게 무슨 가능성을 만들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악마기사 자네가 가진, 괴이던 신비던 무엇이던⋯ 그 힘으로 자네에게 또다시 기적이 일어날 것을 우리는 기대할 수 밖에 없다네. 우리는 그것을 이제 단순히 괴이라고만 부르고 싶지 않지만 말일세. ⋯그렇지않습니까, 용사님."
손아귀 사이로 줄줄 새는 듯한 목소리의 질문과 대비되는 단호한 끄덕임에 이어 굳건한 목소리가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예. ⋯그 힘의 기반은 비록 악이 맞으나, 인간이 그것을 끌어다 쓰는 것은 단순히 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요. 천지신명님들께서 허락하신 것이라 이 땅 위에 일어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는, 이분께서 살아있음을 죄스럽게 생각하시는 것은⋯ 그러니까⋯ 제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그렇지요.“
대현자는 용사 무릎 위의 손을 쓸어주었다.
"저는 그러니까, 꼭 다시 일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곧 날이 맑아질 거라고 합니다. 비가 시원하게 내린 후이니 하늘이 깨끗하고 청명하겠지요. 이곳은 깊은 산 속이니 눈만 뜨셔도 풀 냄새를 맡으실 수 있을 터입니다."
대현자는 목소리가 들썩이기 시작한 어린 용사를 보고 슬며시 웃었다.
"아, 꽃향기도 느껴집니다. 싱그러운 향내를 좋아하셨지요. 새벽이슬이 반짝이는 연둣빛 새싹에 눈길을 주셨던 것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친구에게, 혹은 제가 좋아하는 연상의 지인에게 밖에 너 좋아하는 것이 많으니 같이 나가자 하는 아이 같지 않은가.
"절이라 식사도 좋아하시는 것으로 나올 것입니다. 저를 비롯하여 필요한 이들은 따로 먹겠지만 악마기사께서는 스님분들과 드실 수 있으시겠지요. 생각해보니 저도 같이 먹고 싶습니다."
나가기 싫다 무기력해진 이의 이불을 빼앗고 태양처럼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아이 같지 않은가.
"또, 또⋯ 제가 말주변이 없어 아쉽습니다. 절을 나가 조금 걸으면 흐르는 시냇물이 아주 맑습니다. 너무 맑아 깊이를 알기 어려울 정도지요. 망종이 아까 빠질 뻔한 것을 제가 붙잡아주었습니다. 정상까지도 올랐는데 풍경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제가 올랐을 때는 때가 일러 아침 안개가 있었으나 같이 오르신다면 좀 더 늦은 시간에 오르는 것도 좋겠습니다.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보여 이 산에서는 길을 잃더라도 집을 찾아갈 수 있겠더군요."
대현자는 용사의 옆모습을 본다. 유일한 희망이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을 것들을 모아다가, 이걸 봐서라도 숨을 다시 한번 붙잡아달라 빌어보는 것이다.
”밤에도 어디서든 집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같이 밝은 별들이었습니다.“
내일은 어린 도적도 잡아다 앉혀야겠다. 어린 것들에게 특히 다정하였으니. 혹시 모르니 모레에는 투사도 앉혀봐야지.
卍
⋯어린 것이 어쩌다 덫에 잡혀서 이 고생인지. 쯧.
게 있느냐, 사라도령아, 할락궁이야. 가서 혼살이꽃 가져와 이 아해에게 주거라. 들어오지 못한 그 고얀 것에게는 꿀밤이나 한 대 호되게 먹이고, 그 옆의 아해에겐 찬물이나 주어라. 그리고 돌아와 이 불쌍한 것 데려다주고. 나는 삼신과 상제를 좀 보아야겠으니.
일을 얼마나 주먹구구로 하길래 어쩌다 건넛 땅의 아가 저길 구르고 자빠졌는지를 좀 내 물어야겠다.
卍
"정말 괜찮겠나?"
"낭비할 시간이 있었나 보군."
섬돌에 발을 내리다 비틀거려 용사가 제가 업고 내려가겠다 외쳤다. 악마기사가 기둥을 붙잡고 미간을 찌푸리려다가 말고 용사를 노려보는 것에 대현자는 제법 기운이 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문을 나가는 사이, 표현을 돌려돌려 몇 번 더 상태를 묻긴 했지만.
그래도 무시하지 않고 답을 해주는 것을 보면 상태가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도 거동에 문제가 있었으면 대답조차 아끼고는 출발해버렸을 테니까.
"나리, 고삐 제가 잡을깝쇼?"
"알아서 하겠다."
"어린 도적아, 전우 말 성질이 여간하여 그건 어려울 것이다!"
도적이 흑마의 고삐를 잡으려 손을 우물쭈물했다. 악마기사는 빠르게 올라타 고삐를 손에 쥐었다. 도적이 탄 말은 그의 말보다 조금 작고 악마기사의 말이 제 주인을 닮은 듯 성질이 대단하여 접근조차 어려웠다. 어린 눈동자에 아쉬움이 스쳤다.
용사에 이어 대현자까지 말에 올랐다. 노승과 여덟 승려가 배웅하기 위해 나와 대현자를 도왔다.
"점점 더 피로한 듯합니다. 허허."
"대마귀왕이 있는 곳이 황천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대현자께서는 꼭 몸조심하십시오."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악마기사는 주지승의 얼굴과 절의 모습을 한 번 눈에 담는 듯 하더니 말도 없이 슥 출발해버렸다. 원체 똑똑한 말이라 따로 지시할 것도 없이 알아서 출발해버린 탓이다.
"아이고, 나리 같이 가요!"
"악마기사, 너무 속도 내시면 안 됩니다!"
"전우야, 그러다 또 구른다!"
아이들과 투사가 뒤를 홀랑 따르고 마지막으로 대현자가 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쫒았다. 뒤에서 그들의 여정에 안온함이 있기를 비는 소리가 들렸다.
卍
젠장, 다음 마을 전에 기억을 한 번 날려야 할 텐데.
[그 고생을 해놓고 또 그딴 생각이 들어, 버러지?]
아니 이 새끼가⋯. 천제면 모를까 바리 신 눈에 또 들었다간 우린 다 죽어!
[네 놈이 죽는 거겠지! 그리고 자꾸 주도권 잡겠다고 깔짝대서 연결이 아주 뜯길 뻔한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건데 그 소리가 또 나와?! 저분 영혼은 영영 찢길 뻔했어!]
그건 애송이 네가,
[닥쳐! 또 이런 일 생기면 다 네 놈 탓이니까!]
시발, 뭐 이런, 시발⋯.
卍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서천(西天)으로 가신다고 나무아미타불